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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페이지들/PENSIEVE

"INTJ와 기독교"

2022.12.25.

나는 INTJ이면서도 교회를 다니고 있는 사람이다. 교회에서 보여지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정말 독실하다라는 평을 받지는 않을 수 있겠지만, 내 나름대로의 신앙관은 가지고 있다. 교회를 잠시 안나가던 때에도 과거 이력서에 표기하게끔 되어있던 종교란에는 '기독교' 라고 썼다. 교회를 다니지만 또 사주 팔자는 좋아한다. 명리학을 공부해본적은 없지만, MBTI와 같이 흥미 관점, 그리고 정말 오래전부터 쌓인 빅데이터에서 도출된 결과물이라는 생각에.

성경도 명리학도 일종의 블록체인이랄까. 수백년 수천년동안 계속 기록되면서 남은 정말 굵은 선들. 인간의 삶이라는게 아무리 창의적이고 발전적이라 하지만 100년 남짓한 수명에서 생산적일 수 있는 활용 년수는 많이 잡아봤자 60년 정도. 수 많은 사람들의 60여년 플러스 마이너스의 시간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기록들 중 하나가 성경이고 명리학이라는 생각. 한국에서는 블록체인=가상화폐로 여겨지지만, 본질은 블록체인 기술, Ledger 를 만들어내는 기술이라 생각하는데, 어느 순간 그것은 사라지고, 가즈아와 탈중앙화(Decentralizaition)을 빙자한 사기극만 남아있는 것 같지만, 어쨌든 성경과 명리학 등 이러한 기록들은 옛날 시대의 블록체인이랄까.

우선, 기독교인과 신앙인은 전혀 다른 단어라고 생각한다. 기독교인은 말그래도 교회 안에 속한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 신앙인은 말그대로 교회에서의 가르침, 즉 성경에서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교회 안에서 너무나도 많은 성경적이지 못한 사람들을 봐왔고, 출석할 교회를 찾는다고 매주 다른 교회를 갈 정도로 '전문적인 노마드 크리스천' 이었을 때 정말 다양한 케이스들을 보고 학습하였기 때문에 기독교인와 신앙인을 분류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신앙인이 되고 싶은 기독교인이라고 스스로를 정의를 했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믿음은 있는 것 같으나, 성경에서 강조하는 구원론의 관점에서 나는 구원받은 사람인가에 대해 질문을 받는다면 쉽게 답하지는 못할 것 같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요즘 유행하는 MBTI의 관점에서 나는 그 이유를 찾아보려고 했다.

INTJ로서 매우 공감이 갔던 meme

요즘 유행하는 MBTI 열풍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INTJ가 최대 수혜자라고 생각을 했다. 나도 내 성격을 잘 알지만, 정말 이상하고 사회에 융화(Blend In) 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 존재이기도 했다. "어? 나는 INTJ인데 엄청 사회성 좋고 잘 융화하고 있는데?" 라고 생각한다면, 가면을 쓰는, 즉 다양한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는 INTJ의 특성상 사회성 있는 페르소나가 가동 중인 상태라고 보면 된다. INTJ에 대한 설명들을 다른 MBTI들이 찾아보기 시작하면서 INTJ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위선과 이중성이 아닌 스스로의 생존을 위한 사회적 가면에 대한 이해를 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수혜자로 보았다. 

https://www.truity.com/blog/religion-and-personality-type

이 글로 생각을 정리하면서 찾아본 자료 중에 흥미로운 조사 결과가 있어서 가져왔다. 3,036명을 조사하였고, 개별적으로 신의 존재를 믿는지 안 믿는지 그리고 MBTI는 어떤 유형인지를 조사하였는데 결과를 보면 흥미로운 점은 INTJ가 신을 믿지 않는다에 1위를 했다는 점 그리고 신을 믿지 않는다와 잘 모르겠다를 답한 유형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T(사고형)이 다 있었다는 것 그리고 신을 믿는다에서는 F(감정형)이 다 들어가있다는 점. 기독교를 떠나서 자기보다 우월한 존재, 삶의 주도권이 본인이 아닌 다른 주체에 있다는 것을 INTJ는 받아들이지 잘 못하는 것 같다. 기독교적인 표현으로는 '내어드리지 못한다' 라는게 맞겠다. INTJ는 기질상 고독에 익숙하면서 친숙하고 스스로의 내면을 자주 탐색하다보니 자기 객관화 측면에서는 다른 MBTI에 매우 최적화되어있는 MBTI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기질은 결국 생각이 많고 꼬리에 꼬리를 물다보니 논리를 추구하고 모순을 찾아내는 역량이 있다. 이러한 역량이 기독교를 접근할 때 종교로 접근한다기 보다는 하나의 연구대상,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어 F유형처럼 종교를 받아들이는 것에서 매우 쉽지 않다. 성경의 무오성이라고 하나 읽다보면 오류들이 보이고, 관점에 차이에서 이방인이 되기도, 분열의 영이 되기도 한다는 것에서 상당히 기독교의 관점에서 쓴, 절대 진리라는 입장에서 쓴 배려없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적어도 지금 단계에 있어서 나의 신앙은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아닌 머리로 이해하려고 계속해서 정보를 찾고 넣고 하는 단계라는 점. 성경을 읽을 때 받아들여지는 부분들이 있고, 이 부분은 인간으로서는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에, 내가 할 수 없는 선택을 한 성경의 인물들에 대한 존경심과 경외심 그 사이의 느낌은 가지고 있다.

오래 전부터 교회를 다녔고, 교회를 다니는 주변 사람들이 많으니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에 대한 거부감은 없으나, 무지성으로 믿으며 기도하거나,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있다. 개인적으로는 방언은 경계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지극히 감정에 취해서 휘뚜루 마뚜루 혀가 꼬이고 쓰러지는 애들을 봐왔기 때문인데, 이는 오늘날의 찬양의 패턴에서 원인을 찾는 편이기도 하다. 찬양 예배의 콘티를 보면 잔잔한-신나는-잔잔한 흐름으로 가면서 사람의 감정을 고조시키고, 나는 죄인, 나는 용서받은 죄인이라는 감정을 자극함으로 눈물을 불러오고 감정의 홍수 속에 트랜스 상태에 빠져 혀가 꼬이게 만드는 흐름을 만들어내는 찬양에도 있다고 봤다. 가장 성경적인 찬양을 시편 찬송이라 생각하는 것도 시편 찬송을 하면서 방언을 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본적이 없다. 시편 찬송을 하면서도 방언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지금 출석하고 있는 교회도 고신측 교회다. 강해식 설교를 하고, 목사가 주중에 본 유튜브나 예능에서 예화를 발췌하여 설교를 풀어나가는 식이 아닌, Verse by Verse로 성경 원문을 해석하고 전달하려는 교회를 출석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기질이 있다보니, 눈치도 빠르고 사람에 대한 판단도 빠른 편이다. 지행일치를 보여주지 않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거부감이나 역겨움이 있다. 한편으로는 송구영신 예배 때 내년의 말씀 뽑기를 하는 상당히 미신적인 행위와 같이 예전에 외국에서온 기도를 하고 그 사람에게 맞는 말씀을 뽑아주는 목사를 만난 적이 있었고, 그 분한테서 받은 말씀이 있는데 듣고 헛헛한 웃음만 나왔던 기억이 있다. 성경 말씀이 주는 오묘함이라는게 있는데, 그것을 그때 느꼈다.
그 말씀이 나의 기질을 너무나도 잘 설명하고 있었기 때문인데.

에즈라 7장 10절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누가 보더라도 너무나 INTJ 스러운 말씀이었다. INTJ는 율법주의자가 되기 너무나도 좋은 기질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https://www.quora.com/Is-it-hard-to-be-a-Christian-being-an-INTJ

해외 포털들에서도 INTJ들끼리 본인을 탐색하고, 왜 INTJ로서 살기가 힘든지,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더 힘든지에 대해 토론하는 아고라가 많이 있을 것을 봤다. 그 중에 공감이 갔던 내용이 있어 가져와봤다. 'Aliens in a world of humans' 라는 표현이 너무나도 찰떡 같았다. 어딜가든 이방인라 느껴질 때, 나만 맞지 않는 도형이라고 느껴질 때가 종종 있었다. 그 느낌을 표현하거나 내색하지는 않지만. 

https://wandering4words.wordpress.com/2017/04/11/how-a-christian-intj-relates-to-god/

어떤 한 INTJ이면서도 기독교인이 써내려간 내용 중에서 교리적인 부분이나, 지식적인 부분에 있어서의 충돌은 없었으나 가장 본질적인 부분, '하나님이 사랑한다' 라는 감정적인 부분에서 와닿지가 않았다고 서술하는 것을 보며 공감 되었다. 특히 윗 글에서 글쓴이가 말한 부분이 신앙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했는데.

But my point here is that theology is a stronger foundation for faith than mere emotion.
I can trust the knowledge, logic, and facts supporting God’s existence so much more consistently
than I can trust my “feeling” that God exists. It’s about the facts, people.

감정에 기반한 믿음보다 더 굳건한 것은 신학에 기반한 믿음이다. 하나님이 존재한다라는 것을 뒷받침하는 지식과 논리와 사실들은 감정보다 더 신뢰가 가능하다는 글쓴이의 말이 내게는 너무도 설득이 되었다. 감정은 시시각각 변하니까. 마치 모래성과 같이.

INTJ인 기독교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다. 더 많이 깨지고 질문도 더 많이 던지게 되는. 하지만 교회 내에서 INTJ의 질문들을 받아줄 목자가 많지 않다는 것도 있고.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하나님이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바꿨는지에 대한 체험에서 비롯된 간증을 듣고 싶은 것보다 교리적인 부분, 기독교가 영향을 주고 있는 사회 현상, 기독교의 문제점과 개선점 등 이런 부분들을 이야기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기본적으로 사람의 감정에 대한 관심이 많이 없다. 어떻게 하면 효율화를 할까 문제점을 포착을 하고 개선을 하는 것에 더 관심이 많다. 꼭 종교가 아니더라도 매사에 있어서.

아마 이 글을 찾아서 들어오는 INTJ라면 그래도 기독교인이 아닌 신앙인이 될 수 있게 좀 더 탐구해보라고 당부하고 싶다. 내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정말 쉽지 않기도 하고 사람에 대한, 시스템에 대한 환멸을 느낄 때가 많지만.
INTJ에서 T는 Thinking을 뜻하지만, Truth를 뜻하기도 한다고 생각하니까.
진리에 가장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기질을 가진건 INTJ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