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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페이지들/PENSIEVE

"착한 사람이 잘 되는 세상"

2023.01.03.

마지막 직장에서 퇴사를 당하면서 알게된 분들에게 카카오톡으로 인사를 돌렸다. 그 중 한분에게 보냈던 메시지 내용 중에서 제목을 뽑았다. 착한 사람이 잘 되는 세상을 만들어달라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 그 분이 술자리에서 내게 해줬던 말 중에 나를 보면 자기 아들이 생각난다고 했었다. 아들이 착해빠진 녀석이라며 착한 사람이 잘 되는 세상이어야 하는데 라면서. 착한 사람은 잘 되기 힘들다는 것을 어린 나이에 깨달았다. 남을 밟고 올라가야 하고, 권모술수와 정치에 능해야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세상이었다.

할아버지는 정계에 입문을 하셨다가, 아랫 사람에게 식사를 사줬다가 할아버지를 시기한 내부 고발로 정계에서 물러나셨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외국인 근로자들에게도 함부로 하지 않고 존경받던 아버지는 IMF 때 짐을 싸고 나오셔야했다.
은퇴한지 10년이 넘어도 그때 당시 건설현장에서 노동을 하던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연락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서 아들로서 그리고 인생 선배로서 정말 존경을 한다.
지금은 한 아파트 단지의 동대표로 봉사를 하고 있는 지금도 청렴, 결백, 공정과 상식, 정의를 말하시고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것을 보면서 존경스럽다. 정말 많은 이권이 오고가는 아파트 입주자대표에서 모두가 입을 맞춰 찬성표를 던질 때 소신표로 반대를 던지는. 거수기 역할만 하는 동대표들 사이에서 입주민을 위한 동대표가 되겠다며 열심히 하시지만, 옳은 소리를 하는 사람 한명으로는 세상은 바뀌지 않기에. 입주민들은 입주민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동대표들에게 불만은 쌓여있는데, 내 입장에서는 그렇게 될 줄 몰랐나?라는 것이다. 관상은 사이언스고, 그때 당시의 동대표 후보들을 보면 얼굴엔 욕심이 가득, 정치질로 연명해온 사람들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보였음에도 그 사람들 뽑아준 입주민들이 문제.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수밖에. 지금의 5060세대가 건강한 견제가 있는 모범적인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데 2030 청년 세대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줄 수 있겠나. 다른 동대표들에게 협박 전화도 받고, 일부 생각이 마비된 극성주의자 입주민들에게도 욕을 먹으면서도 꿋꿋하게 소신을 지키면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더더욱 아버지로서 존경한다.
지금까지 참 여러 회사를 다니면서 소신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너무나도 잘 알기에. 소신대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결과로 이력서는 엉망진창이 되었고, 간신히 1년 채웠거나 1년 미만의 경력이 대부분이었다. 정말 경력 영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 그렇게 해서 모아 모아 7~8년 정도의 물경력으로 보이는 경력이 되었다. 나는 물경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대중들의 평가는 그렇지 않기에. 그러면서 면접 때 가장 많이 받는 단골 질문이 짧은 경력에 대한 부분이었다.

지원자의 이력을 보니까  한곳에 오래 있지 못하고, 경력 대부분이 1년 미만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저런 질문을 많이 받다보면, 한국 사회가 많이 경직되어있구나. 퇴사의 이유를 근로자에게서 찾고자 하는구나 라는 것을 느꼈다. 주변의 인생 선배들이랑 이야기 해보면서 그분들이 이야기 해주신 것이 한국은 어쩔 수 없다고. 우린 아직까지 평생직장 이라는 걸 중시해서 그렇다고. 평생 직장, 평생 살 집을 구하는 것이 한국이라서.

첫 번째 직장은 내 경력 중 가장 길게 있었던 직장이기도 했다. 어느 날 스스로가 안정적인 환경에 취해 바보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기 전까지는. 그러면서 새로운 시도를 위해 첫 번째 퇴사를 했고, 그 시도를 통해 나라는 사람에 대한 자기객관화의 기회가 되면서 새로운 길로는 가지 않는 것으로 선택을 했다.

경제활동은 계속 해야 했기에 이전 직장의 경력을 활용해서 새로운 조직으로 입사를 했지만, 그곳에서 1년만 근무를 하고 퇴사를 했다. 그때 당시 팀원으로 합류를 했고, 팀장이 있었다. 여자였는데 주변의 여자인 친구들도 내 이야기를 들으면 여성 혐오가 안생기는게 신기하다 할 정도로 지금까지 직장에서 그리고 사회생활에서 여복이 없었다. 내게있어 직장과 여성의 조합은 최악의 경험의 연속이었다. 여성에 대한 색안경이 처음부터 있던 것은 아니었다. 성별에 대한 선입견은 없었다. 공교롭게도 계속 반복되는 문제의 경험이 유독 여자라는 성별을 가진, 다른 여자 동료들과는 잘 지냈음에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을 했다. 다른 여직원분들도 나와 문제가 있던 그 여직원을 싫어했으니 그 사람이 문제지만 말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여자라는 성별을 이용하는 것이 역겨워서.


두번째 직장에서의 팀장은 계속해서 의사 결정을 뭉개는 사람이었다. 팀원들이 업무를 맡아 진행을 하면서 팀장의 의사 결정을 계속해서 기다리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고민해볼께요" 라고 하고 팀원들이 기다리다 지쳐서 빨리 결정해달라고 닥달하면 그제서야 데드라인 임박해서 결정해주면 팀원들은 손과 발에 불이나게 일을 하거나, 데드라인을 넘겨서 의사결정을 해줘서 외부 파트너사에 사과를 하는 것은 팀원들이 감당을 해야했었다. 마이크로 매니저였고, 우리의 관점에서 쓸데없는 불필요한 디테일에 대한 집착이 심했다. 예를 들어 여기에 마침표가 들어가야하는지 안들어가야 하는지와 같은 것. 업무상의 이메일에서 이모지를 그렇게 많이 쓰는 사람도 처음 봤다. 

이메일 예시

저것도 스타일이라면 할 말 없겠지만, 사람이 가벼워보인다랄까. 대외적으로 나가는 모든 메시지에 실무진이 문서를 작성해주면 그 문서 하나하나에 이모지를 여기 저기 넣고 있는 팀장을 보고 있자니 한심했다. 이모지를 안 쓰면 죽는 병에 걸린 사람 같았다. 그때 당시 팀원들 중 가장 선임이었던 나였기에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수는 없어서 윗사람에게 가서 이 부분에 대한 해결을 요청했었다. 팀장의 리더십 패턴을 바꾸던지, 아니면 팀장을 정리하던지. 종국에는 윗사람의 의사결정도 이해가 가지 않았기에 퇴사로 이어졌지만. 팀장 위에 새로운 사람을 외부에서 데려와서 팀장을 패싱하고 그 사람과 직접 소통하고 의사결정을 받는 것으로 구조를 세팅하였다. 그때 당시 아킬레스건인 팀장을 왜 정리하지 못할까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으나, 당장의 불편함이 개선이 되겠다는 희망을 품었다. 그 희망은 오래가지 못했고, 부장이 팀장을 계속 의사결정의 자리에 끌어들기 시작하면서 결국 내가 나가게 되었지만. 부장도 이상한 사람이었기에 더 이상의 개선이 될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부장은 여직원들에게 이상한 발언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때 한창 미투로 세상이 떠들썩한 시점에서도 '섹시하다' , '정신 못 차리게 덮쳐야 해' 와 같은 발언을 하는 사람이었다. 저 발언의 대상이 사람이 아니었지만, 영업하는 대상 회사를 칭하는 표현방법이 상당히 저급했다. 친했던 여직원분이 내게 그런 이야기를 전해줬을 때 얼마나 화가 나고 어이가 없던지. 교회를 다니면서 성경구절을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에 해놓고 딸이 있는 사람이 외박하는 워크샵을 좋아하고 저런 발언을 하는 이중성에 역겨웠다. 그 친했던 여직원분은 결국 제일 먼저 회사를 퇴사하게 되었고, 그다음은 내가, 이후로 계속해서 사람들이 퇴사를 했다.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에 여러 루트를 통해 자료를 찾아보면서 그 팀장에게 힘 있는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제서야 그 모든 것이 설명이 되었다. 아빠가 쌓아준 스펙에 아빠의 후광에 힘입어 자리를 유지하는. 내가 그 조직에 오래 있어도 팀장이 되거나 위로 갈 수는 없겠다는 판단이 들었기에 퇴사를 선택했다.


이후 다른 조직으로 옴겼고, 거기서는 괜찮겠거니 싶었다. 그런데 입사하자마자 입사를 같이 한 동기가 일주일도 안되서 퇴사를 했다. 그것도 갑자기 오후 즈음에 짐을 싸서 나갔버렸다. 나는 정규직으로 입사를 했던 것이었고, 그 분은 육아휴직을 가는 분의 대체로 채용이 된 것이었는데, 육아휴직을 가는 여직원분이 그분에게 인수인계를 해주는 상황도 아니었고, 엄청 무시하듯 편의점 심부름을 시키고 하는 상황이 반복되자 퇴사를 해버렸다. 나는 이후에 이 육아휴직을 간 여직원분과도 직장 생활하면서 처음겪는 일을 겪게 된다. 그 이야기는 뒤에서 풀어보기로 하고.
그곳에서는 여직원 터줏대감이 두명이 있었다. 오랜기간 동안 팀장이 공석이었는데, 원래 있던 팀장은 그 두명의 터줏대감에 밀려 타 부서로 팀장이 아닌 실무진으로 낮춰서 가면서까지 이 팀에서 나가고 싶어했었다고 나중에 전해 들었다. 양대산맥 중 한명은 육아휴직을 가고 얼마 안있어서 새로운 대체직이 채용이 되었다. 그래서 좀 평화롭겠구나 싶었는데 남아있는 또 다른 터줏대감이 문제였다. 새로운 팀장이 업무 지시를 하면 그 업무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팀장보다 더 윗사람에게 가서 자신은 이 일을 하지 못한다며 다른 사람에게 업무를 맡기라는 태도로 본인의 업무를 최소화하였고, 가족돌봄휴가, 생리휴가 등 휴가를 매번 썼다. 그 사람이 1명분의 몫을 안하면서 그 업무는 다른 직원들의 몫으로 돌아왔고, 다른 사람들은 퇴근도 못하고 야근을 하는데 혼자서 정시퇴근하는 모습이 계속해서 연출되었다. 나중에 알게된 것이지만, 새로운 팀장이 왔을 때 그 여직원이 팀장을 따로 찾아가 나를 내보내라는 식으로 계속 종용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팀장은 내가 정말 일을 못하고 문제있는 사람인줄 알았다고 했다. 몇달을 지켜보니 그것이 아니었고, 나는 일을 잘하고 오히려 문제가 있는 사람은 그 여직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 여직원은 팀장이 자신의 말에 따르지 않자 팀장보다 윗선으로 가서 팀장을 깎아내리면서 팀장을 내보내라는 식으로 계속 말했다고 한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업무 회피에 남아있는 직원들에게 과중되는 업무로 윗선에 까지 가서 이야기 했지만, 오히려 윗선은 해당 여직원을 보호해주기 급급했다. 윗선이 여직원을 얼마나 보호해줬으면 교대로 재택근무하는 날이면 팀장은 여직원과 마주치기 싫어서 의도적으로 날을 다르게 하는 피하는 상황까지 왔다. 윗선이 팀장의 권위를 제대로 세워주지도 않고, 여직원을 쉴드쳐주는 상황들이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세 번째 퇴사를 하게 되었다.
앞에 잠시 언급했던 육아휴직 간 여직원과의 트러블을 이어 이야기 하자면 육아휴직을 가 있던 여직원이 자신의 대체직에게 연락해서 괴롭혀서 결국 그 대체직도 퇴사를 하는 상황이 왔다. 육아휴직을 가 있는 사람이 무슨 괴롭힘이냐 하겠지만, 그 요구사항이 내게 왔을 때 난 황당하기 짝이 없어 거절을 했다. 자신의 컴퓨터에 있는 파일들을 빼달라는 요청이었다. 육아휴직을 갔는데 업무를 할 일은 없을테고, 회사의 보안상 이슈가 있으니 난 빼서 줄 수는 없고, 가져가려거든 본인이 와서 직접 가져가라고 했다. 인사팀에도 확인해서 빼서 주지 말라는 것도 확인을 했었고. 그리고 나서 얼마 후 내선 번호로 전화가 오는데 받자마자 한 남성이 육두문자를 막 뱉길래 잠자코 듣고 죄송하다며 전화를 끊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파트너사의 누군가에게 내가 실수한 것이 있나 싶어서 누구인지 우선 확인하기 위해 내선 번호의 핸드폰 번호를 카카오톡에 등록해봤는데 육아휴직간 여직원의 자녀 사진이 뜨는게 아닌가. 큰 실수를 한게 아닌가 싶어 올라왔던 긴장감이 한순간에 풀리고 헛웃음만 나왔다. 지금까지 직장생활 하면서 처음 듣는 육두문자가 이렇게 황당하게 생길 일인가 싶고, 참 돈벌기 힘드네 싶어 웃음만 나왔다.
그리고 또 다른 직장으로 옴겨서 들어갔다. 업무 만족도도 높았고,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겠다 싶었다. 같이 입사했던 남자 동기분이 2주 만에 퇴사를 하고, 면접 차점자였던 다른 사람이 왔다. 여자분이었는데 경력 면에서나 나보다 많이 모르는 상황이었고, 최대한 도와주려면서 하려 했다. 동기 사랑 나라 사랑이라고 하지 않나. 근무  장소가 각각 다르고 내가 일하던 장소는 탕비실이 있어 다과나 커피 음료등이 있어 남자 동기가 있었을 때도 종종 가져다 주었고, 똑같이 새로 온 여자 동기분께도 가져다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팀장이 날 부르더니 해당 동기분이 나를 매우 불편해한다는 것이었다. 간식을 가져다주고 하는 내 행동들이 작업을 거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황당했고 "나도 눈이 있는데?" 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뭐 어쩌겠나 싶었다. 팀장이 사과할 생각이 있냐는 말에 무슨 잘못인지 모르겠지만, 사과는 하겠다라고 했는데 당사자가 나를 보기 껄끄럽다며 보기 싫다는 상황이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는데 팀장은 요즘 같은 시대에서는 이런 일이 생기면 피해자라 주장하는 사람의 말을 우선할 수 밖에 없다고 미안하다며 별도의 인사발령이나 공식적인 절차도 없이 서로 마주치지 말라는 결정을 내리고서는 나를 업무 배제를 시켰다. 그런 결정을 당하니 황당하기도 하고, 주변에 HR팀에 근무하는 사람이나 노무사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부당하다는 말을 해줬지만, <정뚝떨>이라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로 정이 떨어져서 그렇게 네 번째 퇴사를 하게 되었다. 퇴사를 하고 약 한달이 지난 시점에 팀장님한테 안부 인사차 전화를 했을 때 그때 정말 미안했다며, 내가 퇴사를 하고 그 여직원은 또 다른 남자 직원과의 비슷한 트러블을 일으켰다고 했다. 그냥 도끼병 말기 환자였던 걸로.
업무 배제가 된 상태에서 미친듯이 이력서를 돌리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그러면서 들어가게 된 회사였는데, 매우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경영지원하는 여사원 한명을 빼고는 모두가 남자였다. 안도감을 느꼈다. 여기서는 문제는 없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정말 인생에 마가 꼈다라는게 이런 것을 뜻하는건가 싶을 정도로 험난했는데, 첫 출근을 한 날 사무실 분위기가 이상함을 느꼈다. 대표와 이사들이 있고 실무를 하는 과장,대리직급이 없었다. 나만 과장, 그리고 입사한지 2주된 사원 한명. 그리고 시작된 월요일 주간 회의에서 사원에게 육두문자를 뱉는 대표의 모습을 보고, 저게 저렇게 잘못을 한 것인가 싶었다. 사회 초년생인 사원이 모를 수도 있지. 그리고 모르면 물어볼 수 있는 환경 조성은 대표 외 다른 임직원들이 해줘야되는게 아닌가 싶었다. 사원이 잘못한 부분이라고는 물어보지 않고 자의적으로 판단해서 한 것일뿐, 사원은 열심히 무엇이라도 했고, 그것에 대한 방향성은 윗사람이 정해주었어야 했다. 그것을 안해놓고 사원에게 화를 내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출근하는 날 그런 모습을 보고 이후는 계속해서 실망의 연속이었다. 파트너사와의 여섯시부터 밤 열한시까지 지속된 술자리에서 (그것도 1차) 자신의 아내에 대한 흉을 보는 대표의 모습에 실망을 했고, 이후 2차는 파트너사에서 우리 대표와 다른 직원들과 같이 2차를 가자며, 자기가 알고 있는 곳이 있다며 전화를 거는데 "이모, 오늘 만질 수 있는 여자 있어요?" 라는 말에 놀랐고, 2차를 가기 전에 슬쩍 자리를 피했다. 이후 대표의 술자리에 대한 압박이 갈수록 심해졌다. 파트너사를 만나 술을 샀는지, 만났는지, 계속해서 체크하고 확인하고 왜 안샀냐며 뭐라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출근 마지막 날이 되었던 그날, 나 역시도 어느 정도 마음의 결단을 내리고 출근을 했다. 며칠 전 내가 맡은 프로젝트에서 사고가 터졌고, 나는 이전의 경험들에서 비춰볼 때 그 사고가 터질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고, 프로젝트 초반부터 대표 외 다른 임직원들에게도 계속해서 이런 방식으로 하면 문제가 생긴다고 말을 했었다.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표의 하라는 말에 강행할 수 밖에 없었고, 예상했던 사고가 터졌을 때 담당 PM으로서 무엇을 했냐는 말에 황당했다. 그리고 앞으로 더 터질 문제들을 감당할 수 없겠다는 판단에 다시 한번 퇴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잘못이 아닌 대표자의 잘못된 의사 결정으로 내가 일 못하는 사람으로 대외적으로 인식되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출근하고 대표가 나를 호출하더니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우선 나의 말을 듣기를 바랬던 것도 아니었는데, 대표의 제안에 더더욱 퇴사에 대한 생각은 견고해졌다. 대표는 나에게 한 제안은 다음과 같았다.
 

1. 퇴근 이후에 사적 약속을 잡지 않는다.
2.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잠드는 모든 것은 대표의 통제를 받는다.
3. 대표의 노트북을 맡길테니 대표의 업무도 내가 한다.
4. 이쪽 업계의 이너 서클, 회장들, 대표들, 이사장들이 오는 모든 자리에 함께 가고 인싸로 너를 키워주겠다.

 
이런 말을 하면서 회사의 파트너사의 임원을 언급하면서 자신이 얼마전에 유명 룸살롱에서 접대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 자리에 파트너사의 임원이 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명함을 돌리러 왔다며, 그것이 열정이고 집념이라 했다. 이렇게까지 해야한다. 위 조건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회사에 남아있고, 그렇지 못하겠다면 오늘 퇴사를 하라고 했다.
위 조건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너무나도 쉬운 결정이었고, 당연한 결정이었다. 아무리 돈을 벌고 싶어도 내 가치관과 내 건강과 바꿀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니까.
내가 먼저 퇴사를 하고 이후 연달아서 직원들이 퇴사를 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 지난 2년간 열명이 넘는 사람들이 퇴사를 했고, 다들 결말은 항상 같았다고. 퇴사 이후 들려오는 이야기에 부당해고로 신고를 하고 실업급여를 받을까 하다가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은 생각에 접었다. 인수인계를 하고 퇴사를 해서 그렇게 나를 욕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인수인계를 하고 나간 것이 잘못된 것인가? 오히려 감사해야하는가. 아니면 인수인계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는데, 이것도 사람을 봐가면서 해야하는 것인가 싶었다. 자신이 지시하지 않았음에도 인수인계를 하고 나가서 분통이 터진 다는 것이었는데. 주변에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문제의 사람인지, 인수인계도 안하고 나간 폐급이라고 소문내고 싶은데 그것을 못해서 화가 난다고. 정말 황당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다.
지금까지 참 다양한 조직에서 있었고, 정말 좋은 사람도 만났고, 정말 나쁜 사람도 만났다. 그러면서 느낀 점은 나는 정말 사회적으로는 성공하는 사람은 못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이 성공을 한다. 다른 사람의 공을 자신의 것처럼 가져가고, 호의가 계속되면 그것이 권리인 것처럼 행동하고, 내 뒷통수를 치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내보내라는 식의 권모술수를 펼치고. 히어로가 승리하는 세상은 영화 속에만 존재할 뿐, 세상은 악당들이 이긴다. 그래서 권선징악의 뻔한 플롯의 영화들이 너무나도 뻔함에도, 결과가 다 예측이되는 클리셰 투성이여도 사람들이 보러가고 좋아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 할아버지가 살아오셨던 것 처럼, 그리고 아버지가 삶으로 보여주신 것처럼 사회적으로는 인정받지 못하고 성공하지 못한 인생이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전 회사의 팀장, 부장, 대표가 아내의 존중을 얻는, 자녀의 존경을 받는 아버지일까라는 생각을 하면 결코 그렇지 않겠다는 생각을 자신있게 할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항상 진심이라는 것. 나는 정치질로 연명하는 삶이 아닌 항상 진심이고 거짓없고 떳떳하기 위해 노력하는. 부끄럼없이 살아가려는 노력이 조금이나마 착한 사람이 잘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나의 작은 꿈틀거림이라고 생각하며 오늘도 아둥바둥하면서 살아간다.

내게 너무나도 위로가 되었던 글. 지금까지 계속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내 길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으니까. 내가 너무도 좋아하고 존경하는 분이 전 회사를 그만두면서 다음 길을 찾기 위해 모색하고 있다고 해준 말이 내게 너무 큰 울림이 있었다.

위를 향하는 불꽃만 꺼뜨리지말고, 계속 노려보며 칼을 갈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