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페이지들/HE

"오늘 하루도 스테이블 하세요"

2022.12.19.

오늘 하루도 스테이블 하세요.

이 말을 처음 듣는 사람이라면 상당히 생소한 말이겠다.

몇 년 전이라면 나도 이 표현을 몰랐겠지만,
아버지가 암벽을 타다 낙상으로 처음으로 병원에 몇 주간 입원을 하면서
간호사라는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다.
퇴근하고 병원에 가서 어머니와 교대를 하고 아버지 옆에서 밤을 같이 보내고
다음 날 아침에 병원에서 출근을 하고 했던 몇 주 동안
간호사가 오히려 의사보다 더 많이 찾아오고 24시간 함께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간호사들의 근무 환경이나 문화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는 아니지만, 그때의 감사했던 좋았던 기억들이 있어
간호사와의 소개팅을 하면서 더 알게 되고, 자연스레 다양한 그들만의 직업적 용어와 문화들을 조금씩 알게 됐다.
NICU (신생아 중환자실)에 일하던 친구와 연인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신규 간호사로서의 부담감, 압박, 마음의 여유도 시간적 여유도 없는 그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고,
보험 심사 간호사로 일하던 친구와 연인이 되면서 상근으로 근무하는 간호사의 세계도 알게 됐다.
연인이 된지 얼마 안되서 코로나 확진자들이 있는 생활치료센터로 파견을 가면서
교대 근무하는 간호사의 남자친구가 어떤 것인지도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다른 직업을 가진 연인보다 조금 더 많은 기다림이 있어야 한다는 점.
그것 외에도 극도의 여초 조직 문화에서의 많은 이야기들.
연인의 직업은 간호사지만 오히려 내가 간호를 해줘야 할 때가 더 많았던 날들.
바이러스가 간호사라서 피해가는 것은 아닌데 환자가 진통제 먹어가며 환자를 돌보는 이상한 상황.
이제는 지나가버린 연인이 되었지만, 그 친구를 통해 알게 된 저 문구가 그렇게 좋았다.

스테이블 하세요.

힘든 일 없이, 안정적으로, 이벤트 없이.
직업적인 특성이 고스란히 담긴. 그들만 알 수 있는 마법주문처럼.
따뜻한 진심이 담겨있는 것 같아서.

지금 이 시각 나이트 근무를 뛰고 있을 간호사들,
다음날 아침 데이 근무를 생각하며 잠 못 들고 있을 신규 간호사들,
이브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퇴근 버스에 지친 몸을 싣는 간호사들,
심평원 담당자와 전화로 한바탕하고 한숨 쉬는 간호사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스테이블 하세요.